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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7.07 나비의 무게 (Il peso della farfalla)

작가 : 에리 데 루카(De Luca, Erri)

국적 : 이탈리아
번역 : 윤병언
출판 : 문예중앙
출간 : 원작 2009년 - 번역 2012년

페이지수 : 156
원서 : Il peso della farfalla



 

책소개


산 속에서 살아가는 밀렵꾼과 산양을 주제로 한 이야기이다. 담담한 문체로 이야기가 진행되며 자연의 순환 안에서 대립과, 동시에 무척이나 닮은 삶을 사는 밀렵꾼과 산양왕의 겨울로 접어드는 무렵의 이야기이다.

 

 

책 속의 문장

 

|사람이 할 수 있는 거라곤 기껏해야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정도다.

 

 

완벽한 날이었다. 더 이상은 아들 중 하나를 때려눕힐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죽기 위해서 겨울이 오기를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무언인가에 도움이 되는 유일한 앎은 현재를 아는 것뿐이었다. 인간은 현재에 사는 법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번에는 나비를 쫓아버릴 수가 없었다.

 

|나비의 무게가 그의 텅 빈 한 줌의 심장 위로 떨어졌던 것이다.

 

 

작품 리뷰 
- 내용을 상당수 포함하므로 유의하여 주십시오. 리뷰 부분은 줄거리 아래 구분선으로 나눠져있으니 스토리를 원치 않는 분들은 리뷰만 읽어주십시오.

 

개략적 줄거리 :
산양왕은 어릴 적 부모를 사냥꾼에게 잃고 떠돈다. 그의 누이도 독수리에게 잃고, 홀로 떠돌다가 한무리를 찾아가 결투에서 승리하고 우두머리가 된다.
남자는 폭풍과도 같던 젊은 시절을 보내고, 어릴 적 지내던 곳으로 돌아와 사냥으로 생활하며 지낸다. 60에 가까운 남자는 겨울이 시작되기 전인 9월부터 자신의 몸이 예전과 같지 않음을 알게 된다.

겨울의 초입인 11월에 그는 산양왕의 마지막 계절이 될 것을 예상하고, 산양왕을 잡고자 한다. 그리고 여름부터 끈질기게 '최후의 밀렵꾼'에 대해 취재하고자 한 여기자 또한 자신의 오두막에서 만나기로 한다.

 

산양왕은 자신의 마지막 계절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조용히 최후를 맞이하려고 한다.

 

사냥꾼은 올 겨울의 마지막 사냥을 하고자 산에 오른다. 적당한 곳에 위치한 채 기다리다 깜빡 잠이 든다.

 

산양왕은 자신의 부모의 원수인 사냥꾼을 발견한다. 가볍게 소리를 내어 사냥꾼이 자신을 바라보게 만든 뒤 사냥꾼을 향해 뛰어오른다. 하지만 사냥꾼을 짖밟지 않고 도약하여 건너뛰면서 절벽아래로 사뿐히 내려온다. 모든 산양들이 그 모습을 바라본다.

산양왕은 완벽한 날이라고 생각한다. 돌연 다시 절벽을 오른다.

 

산양왕의 기습에 당황했던 사냥꾼은 산양왕이 다시 절벽을 오르자 총을 쏘아 맞춘다. 갑자기 그는 자신을 살려준 산양왕을 죽인 것에 크나큰 후회를 한다.

쓰러진 산양왕의 시체가 파먹히는 것을 보지 않기 위해 사냥꾼은 산양왕을 짊어지고 만년설원으로 향한다. 도중에 나비가 살포시 산양왕에게 내려앉는다. 사냥꾼은 더이상 나비를 쫓아낼 수가 없었다.

 

 ̄ ̄ ̄ ̄ ̄ ̄ ̄ ̄ ̄ ̄ ̄ ̄ ̄ ̄ ̄ ̄

 

페이지수는 짧지만 이야기는 밀도있게 진행된다. 책읽기 습관을 들이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중편 소설을 추천한다.

 

등장인물은 실질적으로  산양왕과 사냥꾼 뿐이다. 각각 자연과 인간을 대표하는 둘은 마치 쌍둥이처럼 닮았다. 그들의 세계에서 외톨이이자 외골수인 둘은, 각자 배신의 흔적인 복부의 상처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삶의 무게를 다루는 모습에서 인간과 동물의 차이가 나타난다. 산양왕과 사냥꾼의 대결에서 결국 자연 속의 사람일 수 밖에 없음을 묘사한다. 항상 인본주의적인 관점이 많은 서구권에서 드문 소설이다.

 

서문에 작가가 직접 밝히듯 작중에 나오는 나비는 삶의 무게를 의미한다. 작가의 삶에 대한 고찰을 엿볼 수 있는 이 표현은, 우리가 그토록 고뇌하고 치열하게 산다고 여기는 삶에 대하여 나비 한마리의 무게로 표현한다. 우리의 삶이 그처럼 가벼운 것이다는 의미임과 동시에 어떤 순간엔 그 무엇보다 무거운 무게임을 묘사한다.

 

개인적으로 소설에서 슬픈 사실은 사냥꾼과 산양왕은 그들의 경험을 끝끝내 공유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도. 마지막 산양왕을 쓰러뜨린 사냥꾼은 드디어 여기자에게 무슨 이야기(아마도 자연과 삶에 대한)를 들려줄지 결정하지만 결국 이루어지지 못했다. 어쩌면 외골수에 어울리는 최후일지 모르겠다.

 

우리의 삶 속에서 쉽사리 볼 수 없지만, 틀림없이 어딘가 존재하는 한 삶의 형태를 담담하게 묘사한 걸작이다.



참고

 

- 작가는 성경 번역자이기도 하다. 따라서 작품 중간에 종교적 색채가 있는 건 사실이다. 간혹 이런 부분이 조금만 나와도 경기(..)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는데(심지어 연금술사마저 종교적 거부감을 가진 사람에게 경고해야 하지 않냐는 글도 봤다), 작품을 그러한 편견을 가지고 보는 것보다는 문화적 관점으로 보았으면 좋겠다.

 

- 작가가 직접 한국어판 서문을 달아줬다. 에리 데 루카는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뒤늦게 데뷔한 늦깎이 작가이다. 지금은 이탈리아의 국민작가로 불린다고 한다.

 

- 등반가이기도 한 에리 데 루카의 시선이 담긴 작품이다. 소설과 별개로 뒤에 등반 중 보았던 것에 대한 이야기가 에세이식으로 적혀있다. 해설 또한 작품의 감성을 따라 잘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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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g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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