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 에리 데 루카(De Luca, Erri)
국적 : 이탈리아
번역 : 이현경
출판 : 바다출판사
출간 : 원작 2011년 - 번역 2015년
페이지수 : 144
원서 : I pesci non chiudono gli occhi
책소개
10살 무렵의 한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이다. 한 계절의, 한 만남이 어떻게 평생 간직되는가를 섬세한 문장으로 묘사하고 있다.
많은 것들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던 시절을 우리는 기억하지 못한다. 어쩌면 이 책은 당신을 그 순간으로 데려다줄지 모른다.
책 속의 문장
|밤이면 책에 쌓인 먼지가 꿈 속으로 들어왔다.|
|잉크가 흩어지지 않게 산들바람처럼 살살. 적당한 입김에 글자들이 반짝반짝 흔들렸다. 마치 눈물과 꺼져 가는 불꽃처럼.|
|나비의 계절이 아니었어. 그런데 하얀 나비 한 마리가 묘지 근방을 날아다니다가 내 무릎에 내려앉았어. 아빠가 손을 얹었던 곳이지.|
|지금은 그 풋사랑 속에 그 후에 이어질 모든 사랑이 담겨 있다는 걸 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대신 거의 아무것도 아니었다.|
작품 리뷰
- 내용을 상당수 포함하므로 유의하여 주십시오. 리뷰 부분은 줄거리 아래 구분선으로 나눠져있으니 스토리를 원치 않는 분들은 리뷰만 읽어주십시오.
개략적 줄거리 :
여름을 맞이한 소년은 바닷가에서 엄마와 함께 휴가를 왔다. 소년은 또래의 아이들과는 다르게 말수도 별로 없고, 다른 아이들과 노는 것보다는 아버지가 쌓아둔 책을 읽는 것을 더 좋아한다. 종종 섬의 어부들을 따라 배를 타기도 한다.
하루 일과로 소년은 바다를 바라보며 책을 읽다가, 옆 집의 소녀도 책을 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후 소년과 소녀는 종종 이야기를 나누며 가까워진다.
소년의 아버지는 그의 어머니의 고국인 미국으로 일자리와 생활을 찾아 떠났다. 그 곳에서 자주 편지를 보냈는데, 전쟁 직후 황폐한 이탈리아에서와 달리 즐겁고 유쾌해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소년은 언젠부턴가 다른 3명의 소년이 소녀를 좋아하고, 그 때문에 자신을 괴롭히는 것을 알게 된다.
어른들을 쭉 관찰하며, 분석해온 소년은 하루 빨리 성장하고 싶다는 강박관념에 사로 잡힌다. 자신의 몸이 일종의 껍질이라 생각한다. 3명의 괴롭힘이 심해질 무렵, 한 번은 어부의 도움으로 벗어나지만 자신의 성장에 대한 강박은 소년을 자발적으로 그 3명에게 향하게 한다. 심하게 얻어맞고 병원 신세를 지게 되지만 소년은 후회하지 않는다.
작은 시골에서 이루어진 일은 너무나 간단하게 3명의 소년을 붙잡히게 한다. 하지만 자신이 원해서 맞았던 소년은 그들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 하지만 이에 소녀는 정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납득하지 못한다.
한편, 미국으로 건너간 소년의 아버지는 일자리를 구하고, 소년과 부인에게 미국으로 넘어오라는 편지를 한다. 이에, 소년의 엄마는 당황스러워 하며, 쉽사리 답을 하지 못한다. 소년은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지 않고, 소년의 엄마는 결국 건너가지 않겠다는 답을 한다.
소녀는 갑자기 3명의 소년과 가깝게 지낸다. 사정을 설명해두었지만, 정작 소년은 상황에 적당히 납득하고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그러다 어느 날 소녀가 소년에게 특정 시각에 샤워실에 숨어있으라고 요구한다. 거기서 소녀는 3명의 소년 중 먼저 떨어져 나간 1명을 제외한 두 소년에게 서로 비명을 내면 진다는 조건으로 싸우게 한다. 결국 둘은 서로 피투성이가 돼 쓰러진다.
소녀는 소년에게 키스하고 정의가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소년은 그런 정의를 이해하지 못한다.
소녀가 떠나기 전 마지막 날밤 소년과 소녀는 긴 키스를 한다. 소년은 어른들을 보며 이해할 수 없고, 좋아하지 않았던 '사랑한다'라는 단어를 좋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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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에선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 위주로 서술하였지만, 책에선 60살의 작가가 50년 전을 회상하는 식이라 종종 자신의 현재나 혹은 다른 나이대의 이야기가 잠깐잠깐 섞여 있다. 다소 헷갈리는 부분도 있으나, 소년 시절 생각과 삶의 궤적이 잘 일치시키는 역할을 한다.
소년은 어른들을 보며, 사랑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소년의 부모를 통하여 만족되지 못하는 사랑의 한 형태를 보여준다. 하지만 소년은 소녀를 만나 사랑한다라는 단어를 쓸 수 있게 된다.
소년의 첫사랑은 마치 마지막 사랑이었던 것처럼 묘사되면서, 책 속의 문장에서처럼 이후의 모든 만남의 사랑은 이 풋사랑 속에 다 녹아있던 것이라 얘기한다.
껍질을 깨야한다고 집요한 강박을 느끼던 소년과 자신만의 확고한 정의를 가지고 있었던 소녀의 만남은 벌써 어른이 되었다고 느끼는 아이들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무엇에도 물들지 않은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기 시작한 순간을 보여준다.
그 순간에 두 아이의 풋풋한 사랑은 이미 지나간 과거를 헤집는 마력이 있어 읽는 이에게 아쉬웠던 순간을 돌이키게 한다.
책은 페이지 수에서 보듯 길지 않다. 가볍게 읽어볼만한 길이와 주제를 가지고 있다. 책에 생각보다 미문(아름다운 문장)이 많은데, 번역서에서는 드문일이다. 억지로 화려하게 보이려한 번역이 아님에도 표현자체가 아름다운 문장이 많았다. 최근 수년간 한국에서 무리하게 욱여넣는 미문주의식 작품이 아닌 자연스러움이 있다.
이런 아름다운 문장들과 함께 단어를 풀이해서 의미를 부여하는 소년의 모습은 작가적 시각이 강하다.
사랑은 과대평가 되었다는 소년의 주장처럼 수많은 영화나 책의 묘사마냥 세상을 구원할 기적에 가까운 것이 아님은 확실하다. 대개 결혼을 앞두고 사랑만으로는 결혼할 수 없다고 외치기 때문이다. 정말로 사랑이 기적이라면, 어른이 되었음을 빙자하여 다른 조건을 현미경으로 살피지 않을 것이다. 물론 사랑은 감성만으로 충족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 작품은 다신 한 번 쯤 자신의 사랑관을 돌아보게 만든다.
참고
- 작가의 개인적 경험이 녹아있는 작품이다. 중간중간 다른 나이대에서의 이야기는 거의 작가의 이야기이다. 따라서 자전적 소설의 느낌도 강하다.
- 나비의 무게처럼 작가가 직접 한국어판 서문을 달아줬다. 사실, 서문 내용이 크게 다르지는 않아 한국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는 듯 하다. ㅎㅎ;
- 개인적으로 모르는 단어의 주석을 뒤로 몰아 달아두는 방식은 독서를 방해하는 요소라 생각해서, 바로바로 해당 페이지 혹은 단어 옆에 간략하게 주석을 단 본 작품은 적절했다. 작품 해설은 분석보다는 내용을 따라간다. 의외로 감성적으로 적혀있어서 작품과 연결되는 느낌이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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